한국어이순신세계지도(친근한 한국, 아시아 피스 메이커!)는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을 살라미스·칼레·트라팔가 해전과 나란히 세계 4대 해전으로 소개하는 세계지도형 홍보물이다. 왼쪽 세계지도에는 각 해전의 위치와 그림이 표시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대한민국 지도와 함께 이순신 장군의 생애, 어록("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등), 임진왜란·난중일기·거북선 소개, 국내외 평가가 함께 실려 있다.
EnglishYi Sun-sin World Map ('Friendly Korea, Asia Peace Maker!') is a world map promotional material that presents Admiral Yi Sun-sin's Battle of Hansando as one of the world's four greatest naval battles, alongside the Battles of Salamis, Gravelines, and Trafalgar. The world map on the left marks the location and imagery of each battle, while the right side features a map of Korea along with Admiral Yi's biography, famous quotes (such as 'Those who seek death shall live, those who seek life shall die'), and introductions to the Imjin War, the Nanjung Ilgi (War Diary), and the turtle ship (Geobukseon), together with domestic and international assessments of his legacy.
자료 원고 · 한국어이순신장군 세계지도(한영)_2008
이순신장군 세계지도(한영)는 한국의 영웅 이순신장군을 세계에 소개하는 홍보물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을 막아내며 한국은 물론 아시아의 평화를 지켜냈다. 더욱이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해전은 세계 4대 해전으로 꼽히는 중요한 해전이다. 한국의 영웅 이순신장군을 넘어 세계의 평화를 지켜내고 세계의 역사를 바꾼 세계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알려 나간다.
친근한 한국, 아시아 피스 메이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세계에 평화를 향한 길을 만들어 나가요!
세계 역사를 바꾼 4대 해전
세계 4대 해전은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살라미스 해전은 세계사의 물줄기를 동양에서 서양으로 바꾸는 시초가 되었고. 칼레 해전은 영국을 해상 대국으로 도약시키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한산도 대첩을 통해 일본의 대륙 침략이 좌절이 되었고, 트라팔가 해전은 영국이 나폴레옹의 군대를 무력화시키고 제해권을 장악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1. 살라미스 해전_Sep. 480 BC
살라미스 해전은 기원전 492년에서 448년까지 일어난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이다.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은 페르시아 제국이 자신들의 통치에 끊임없이 반항을 하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혼내주고자 대규모 병력을 모아서 그리스로 침입한 것이다. 전쟁기간 동안 페르시아군은 승승장구 하였으나, 아테네인들의 리더십으로 뭉친 그리스 해군에게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한다. 이 전쟁이 끝난 후, 아테네는 아테네 제국을 이루었으며 그리스는 지중해의 새로운 강국이 된다.
2. 칼레 해전_Aug. 8. 1588
칼레 해전은 스페인 아르마다(스페인어로 함대라는 뜻)가 영국을 침략한 군사작전이었다. 스페인은 영국을 다시 카톨릭 국가로 되돌리고 영국 해적들의 노략질에 대해 앙갚음 하려고 대규모 함대를 편성하여 영국을 침략하고자 하였다. 스페인은 많은 지상군을 준비하였으나 영국 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어떤 항구에도 입항하지 못했다. 영국함대는 스페인 함대와 영국해협 주변인 칼레지방에 있는 그라블린 앞바다에서 해전을 치뤘다. 이 해전 이후에 스페인은 점점 해양력을 잃게 되었고 이는 영국이 새로운 해양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3. 한산도 해전_Jul. 8. 1592
한산도 해전은 1592년부터 1598년에 걸쳐 일어난 임진왜란 기간 중에 벌어진 해전 중에 규모가 크고 중대한 해전이었다. 임진왜란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지휘아래 내전으로 단련된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해 온 것이었다. 토요토미는 이 전쟁을 통해 중국을 침략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이러한 야심은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에 의해서 산산조각 나게 되었다. 한산도대첩 이후에 일본군들은 조선 침략 전략을 바꾸어야 했으며, 전쟁의 양상이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4. 트라팔가 해전_Oct. 21. 1805
트라팔가 해전은 나폴레옹전쟁시대에 일어난 가장 유명한 해전이다. 서유럽 대부분을 재패한 나폴레옹은 그의 제국을 동쪽으로 더 넓히고, 영국을 정복하고자 했으나, 이는 트라팔가에서 넬슨과의 전투로 한나절의 꿈이 되고 말았다. 트라팔가 해전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영국은 수 년동안 바다의 지배자로 남게 되었다.
망령되게 움직이지 말고 조용하고 무겁기를 산과 같이 하라 _ 이순신 장군
옥포 앞 바다에서 첫 해전을 앞둔 조선 수군 장수들에게 신중하고 침착하게 전투에 임할 것을 당부하며 이른 말. 옥포해전은 임진왜란 시 조선 수군의 첫 승리이자, 조선군이 거둔 첫 승리였다. (옥포파왜병장, 5월 10일 기록)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사옵니다 _ 이순신 장군
원균 휘하의 조선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거의 전멸하자, 선조는 “수군을 파하고 육전에 힘쓰라”는 교서를 내린다. 그러나 이순신은 수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터, 수군이 존속해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후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1척의 배를 더 추가하여, 13척의 배로 수백 척의 적군과 맞서 싸워 승리한다. (이충무공행록 기록)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_ 이순신 장군
절대적인 수적 열세 속에서 큰 해전을 치러야 하는 수군의 장수들에게 굳은 정신력을 가지고 싸움에 임할 것을 당부하며 이른 말. 다음 날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은 위와 같은 결사의 정신으로 전투에 임하여, 13대 133이라는 엄청난 전투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한다.(난중일기 1597. 9.15 기록)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_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 1598년 11월 19일 퇴각하는 적과 노량 앞바다에서 대전을 치르는 선상에서 장군은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죽음의 순간에도 아군의 동요를 염려하며 곁에 있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에게 위와 같은 말을 유언으로 남긴다.(이충무공행록 기록)
나라를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됩시다!
이순신
이순신(1545~1598)은 조선시대 해군 장수로 일본의 침입으로 발발한 임진왜란(1592-1598)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지켜낸 영웅이다. 그는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전쟁을 대비하였고, 뛰어난 지혜와 용기, 리더십으로 적을 격파하였다. 장군의 한산도해전(1592.7)은 세계 4대 해전에 꼽히며, 그는 조선을 발판으로 대륙 침략 야욕을 품은 일본을 저지함으로 조선 나아가 아시아의 평화를 지켜내었다.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9)의 지휘아래 1592년 4월 일본의 조선침략을 시작으로 1598년 일본군이 완전히 철수하기까지 지속된 전쟁이다.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노 야쿠(文祿·慶長の役), 중국에서는 렌첸 우루안(壬辰倭亂)으로 알려져 있다. 초반 전세는 조선에게 매우 불리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 의병들의 항쟁, 명군의 도움 등으로 결국 일본은 조선에서 퇴각하며 전쟁을 마무리하였다.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1592년부터 1598년의 임진왜란 기간 동안 이순신 장군이 진중에서 직접 기록한 일기이다. 군영생활 및 여러 해전의 군사전략과 해전상황, 당시 사회의 모습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사료로써 높이 평가 받고 있다. 난중일기에는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장수로서의 고뇌와 나라사랑, 부하들과 백성, 가족 등을 염려하고 배려하는 장군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거북선
일본의 침입을 예견한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주력전함인 판옥선을 기반으로 돌격전투함 거북선을 제작하였다. 배의 모습이 거북이를 닮아 거북선이라 하였으며, 각종 화포를 탑재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전투 시에는 적진에 돌격하여 적의 진영을 무너트리고, 사방에 탑재된 포를 자유로이 쏘아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다.
국내 평가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꼽는 첫 번째 영웅이다. 세대와 지위를 초월해 한민족의 리더들에게 많은 영감과 용기를 주어왔으며, 변치 않는 장군의 정신과 용기는 21세기 한국인들에게 깊이 사랑 받고 있다. “나는 그대를 버렸건만 그대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일등공신으로 뽑았건만 포상이 오히려 부족하다.”(조선 제14대왕 선조), “내 선조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에 기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공 한 분의 힘, 바로 그 것에 의함이라.”(조선 제22대왕 정조), “옛날의 명장이나 어진 장수들로서 백 년에 한 둘 밖에 나지 못하는 그런 인물로도 이 분을 넘어 설 이는 없을 것이다.”(조선 인조 때 대제학 이식)
해외 평가
이순신 장군은 조선뿐만 아니라 원군 명나라의 장수 심지어 적군인 일본의 장수에게 조차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일본의 침략에서 조선을 지켜내고 아시아의 평화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은 숨겨진 세계의 영웅이다.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와 해를 다시 손 본 공로다”(명나라 수군제독, 진린),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다”(일본 해군제독 토고 헤이하찌로, 승전 축하연 답사에서), “영국인에게 Nelson,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이순신이 동양의 위대한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영국 해군준장,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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