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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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운동 한국지도 (2017)
March First Movement Map of Korea (2017)
한국어
3.1운동 한국지도(앞)는 1919년 3월 1일 200만 명의 한국인이 참여한 독립운동을 소개하는 홍보물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 속에서도 전국 곳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그날의 함성과, 조선인의 독립과 자주를 선언한 독립선언서의 정신을 담았다.
EnglishThe March First Movement Map of Korea (front) is a promotional material introducing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which 2 million Koreans took part on March 1, 1919. It captures the spirit of that day, when people across the country shouted "Long live Korean independence!" despite the oppression of Japanese imperialism, and the spirit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hich proclaimed the independence and self-determination of the Korean people.
자료 원고 · 한국어
우리가 역사를 만드는 주인공! We are History Makers!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여러분은 들리시나요? 100년 전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외친 200만 한국인의 외침이 들리시나요? 1919년 3월 1일. 일본 제국주의의 총과 칼의 공포 속에서도 전국 곳곳 에서 200만 명의 한국인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당당히 선포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이 날 한국인의 목소리는 세계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를 세계만방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자존의 올바른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한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인 스스로 일본의 식민 지배를 원하며, 한국 국민은 미개해 독립적으로 나라를 운영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며 거짓된 내용을 세계에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3.1 운동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고 심판했던 한국인의 독립운동이 전 세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혁명계의 신기원을 열었다.’, ‘순수한 학생혁명’, ‘무기를 갖지 않은 혁명’이라며 보도했습니다.
한국인들은 100년 전 3.1 운동을 통해 한국인 스스로 자유와 독립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선포했고, 외국의 간섭과 지배 없이도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우수한 민족임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1919년 3월 1일. 이 날 한국인의 용기는 세계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이천만이 모두 마음속에 날카로운 칼을 품고, 인류 공통의 가치와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가 되고, 인륜과 도덕이 무기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는 오늘, 우리가 나아가
얻고자 하면 어떤 강적인들 물리치지 못할 것이며, 물러서서 계획을 세우면 어떤 뜻인들 펴지 못하겠는가!”
죽음을 불사하고 일본 제국주의와 영원히 싸워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한국인들의 결의는 일본 정치인들에게까지 두려움을 주었고, 전 세계에 평화를 향한 용기를 심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철통같은 무단통치를 뚫고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전개된 3.1 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한국 청년들의 용기와 저항정신의 발로였고, 제국주의에 고통 받는 수많은 아시아 국가 국민에게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나요?
1919년 3월 1일에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200만 명의 한국인들은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청년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100년 전 우리의 꿈을 기억하고 있나요? 당신은 100년 전 우리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고 있나요?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와 3.1 운동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다시 한 번 세계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1919년 3월 1일 그날의 꿈을 담아 한국지도를 제작했습니다. 이 지도에는 100년 전 한국의 독립을 통해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만들겠다는 한국인의 꿈과 의지가 깃든 3.1 운동 유적지와 3·1독립선언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지도를 통해 3.1 운동의 위대한 꿈을 기억하고 21세기 세계를 바꾸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
우리가 바로 역사를 만드는 주인공입니다!
서울
서대문형무소 |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는 3.1 운동 당시 1,600여명의 시위관련자들이 수감되었던 곳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초를 당한 장소이다. 서대문형무소는 잔혹한 일제 탄압의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끊임없이 저항한 한국 독립운동역사를 보여준다.
용산인쇄소 직공 파업시위지 | 용산구
용산인쇄소 직공 파업시위지는 1919년 3월 8일 서울 지역 최초로 노동자파업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3.1 운동은 학생들의 동맹휴학, 상인들의 철시,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이어졌는데 약200명의 용산인쇄소 직공들은 야간작업을 중지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보신각 앞 3.1 운동 만세시위지 | 종로구
종로 보신각은 서울지역 3.1 운동이 벌어진 주요 장소이다. 1919년 3월 1일 만세시위 군중들이 타종을 하였고, 3월 5일 제2차 대규모 만세시위 군중들이 독립연설회를 개최하였다. 3월 9일부터 상인들이 동맹 철시를 할 때에도 그 중심지가 되었다.
손병희 집터 | 종로구
3.1 운동의 거사 전날인 1919년 2월 28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들은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의 집에 모여 독립선언식 장소와 절차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현재 유적지에는 기념표석이 설치되어 있다.
승동교회 | 종로구
승동교회는 3.1 운동 준비과정에서 제1, 4회 학생단 간부회가 열린 장소이다. 승동교회는 연희전문학교 출신의 학생단 대표 김원벽이 다녔던 교회로 학생단은 이곳에서 간부회를 열어 조직을 정비하고 탑골공원의 독립선언식을 준비하였다.
유심사 | 종로구
유심사는 3.1 운동 당시 불교계 민족대표였던 한용운이 머무르며 불교잡지 「유심」을 발행하던 곳이다. 한용운은 이곳에서 불교계의 참여를 약속하였고, 2 월 28일 중앙학림 학생들을 불러 독립선언서 3천매를 전달하였다.
중앙고보 숙직실 터 | 종로구
중앙고등보통학교 숙직실은 1919년 1월 일본 동경 유학생 송계백이 교사 현상윤과 교장 송진우를 만나 2.8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곳이다. 이 사건은 3.1 운동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유적지에는 기념비와 삼일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1919년 착공하여 1921년 준공된 천도교 교당이다. 당시 이 교당의 건축 성금 일부가 3.1 운동을 앞두고 진행된 각종 모임과 운동의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지어진 건축물 중 손꼽히는 건물로 조선 사람 힘만으로 지어졌다.
탑골공원 | 종로구
탑골공원은 1919년 3월 1일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곳이다. 학생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학생과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식을 마친 군중들은 거리행진에 들어갔고 수많은 군중들이 합류하였다.
태화관 터 | 종로구
태화관은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곳이다. 민족대표들은 한용운의 선창으로 독립만세를 부른 뒤 출동한 일제경찰에 연행되었다. 유적지에는 ‘삼일독립선언유적지’ 표지석이 있다.
남대문역전 학생단 3.1 운동 만세시위지 | 중구
남대문역전 학생단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1919년 3 월 5일 학생단이 주최한 대규모 독립만세시위가 있었던 곳이다. 학생단 대표 김원벽과 강기덕이 시위를 주도하였고 수만 명의 군중들이 남대문역전을 출발하여 종로 보신각까지 거리행진을 하였다.
경기도
수원자혜병원 3.1 운동 만세시위지 | 수원
수원자혜병원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1919년 3월 29 일 수원 기생조합 기생들이 독립만세를 불렀던 곳이다. 시위를 주도했던 김향화는 체포되어 징역6개월을 선고받았다. 기생들이 참여한 만세운동은 전국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였다.
만세고개 3.1 운동 만세시위지 | 안성
만세고개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1919년 4월 1일 안성 원곡면 시민 1천여 명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이다. 시위대는 면장과 면서기를 앞장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약 8㎞를 행진하여 양성주재소와 면사무소, 우편소 등을 파괴하였다.
갈산면사무소 터 3.1 운동 만세시위지 | 양평
갈산면사무소 터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1919년 3월 24일 양평 갈산면 주민 1천여 명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이다. 시위 군중들은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주동자들을 체포하자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강화읍 3.1 운동 만세시위지 | 인천
강화읍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1919년 3월 18일 강화 지역 주민 2만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인 곳이다. 강화 장날 결사대를 선두로 주민들은 대규모 만세시위를 벌이며 행진하였고, 시위주동자 유봉진은 강화읍내 종루의 종을 치며 독립을 알렸다.
제암리교회 터·고주리 마을 탄압지 | 화성
제암리교회 터는 3.1 운동 관련 대표적인 순국유적지다.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은 인근지역의 3.1 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제암리 주민들을 교회에 모아 놓고 집단 학살한 후 인근 고주리 마을로 건너가 일가6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충청도
괴산장터 3.1 운동 만세시위지 | 괴산
괴산장터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충북지역에서 처음으로 3.1 운동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1919년 3 월 19일 홍명희 등은 괴산 장날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괴산장터에서는 장날마다 지속적으로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청주우시장 터 3.1 운동 만세시위지 | 청주
청주우시장 터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1919년 3월 7 일 의병장 한봉수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벌어진 곳이다.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의병장인 한봉수는 우시장(서문시장) 입구에서 독립선언서를 나눠주며 군중들을 이끌어 만세시위를 벌였다.
공주 영명학교 기숙사 터 | 공주
공주 영명학교 기숙사 터는 공주장터 3.1 운동 만세 시위를 준비한 곳이다. 1919년 4월 1일 공주장터 3.1 운동 만세시위는 영명학교 목사와 교사·학생들이 주도하였는데 3월 31일 영명학교 기숙사에 모여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였다.
아우내장터 3.1 운동 만세시위지 | 천안
아우내장터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병천과 인근 지역 주민 3천여 명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터에 군중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외쳤다. 헌병의 발포로 순국자가 발생하자 시위 군중들은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강원도
기사문리 만세고개 3.1 운동 만세시위지 | 양양
기사문리 만세고개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현북면 주민들이 만세를 외쳤던 곳이다. 1919년 4월 9일 기사문리 주재소로 향하는 1천명의 시위 군중들에게 일제 군인과 경찰이 무차별 총격을 가하며 양양군내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삼척보통학교 3.1 운동 만세시위지 | 삼척
삼척보통학교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삼척지역에서 처음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1919년 4월 15일 삼척보통학교 교사 김기덕과 학생들은 전교생 176명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신풍리 주막거리 3.1 운동 만세시위지 | 화천
신풍리 주막거리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화천군 상서면 주민 2천여 명이 만세시위를 한 곳이다. 1919 년 3월 28일 화천으로 향하는 시위 군중들은 주막거리에서 일제 헌병과 대치하였고 총격이 가해져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전라도
옛 구암교회 3.1 운동 근거지 | 군산
옛 구암교회 3.1 운동 근거지는 1919년 3월 5일 전남에서 최초로 일어나 군산 만세운동의 중심역할을 한 곳이다. 구암교회를 모체로 세워진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준비하여 군산장터에 모인 사람들과 만세시위를 벌였다.
솜리장터 3.1 운동 만세시위지 | 익산
솜리장터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1919년 4월 4일 솜리장날 만세운동을 벌인 곳이다. 문용기는 독립선언서를 학생과 시민에게 나누어주며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시위 군중이 늘어나 일제 경찰이 무력진압하고 발포하여 문용기 등 6명이 순국하였다.
서문교회 3.1 운동 근거지 | 전주
서문교회 3.1 운동 근거지는 1919년 3월 13일 전주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서문교회 김인전 목사는 전주읍 장날에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변 학교의 교사와 학생, 천도교 측과 협조하여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수피아여학교 3.1 운동 만세시위 준비지 | 광주
수피아여학교 3.1 운동 만세시위 준비지는 1919년 3 월 10일 광주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한 수피아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준비한 곳이다. 수피아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장터에 모인 군중들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주었다.
경상도
시장정 3.1 운동 만세시위지 | 대구
시장정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대구지역에서 처음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1919년 3월 8일 시장정(서문시장)에 모인 군중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시장성 만세시위는 대구·경북지역 최초의 3.1 운동이었다.
영해주재소 3.1 운동 만세시위지 | 영덕
영해주재소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영해면 주민들이 영해주재소를 공격하며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18~19일 성내시장에 모인 군중들은 독립만세시위를 하며 주재소를 공격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벌였다.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만세시위지 | 부산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부산지역에서 처음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3월 11일 수업을 마친 일신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은 전날 만들어둔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영남포정사 3.1 운동 만세시위지 | 진주
영남포정사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진주지역 각처의 주민들이 모여 대규모 만세시위를 벌인 곳이다. 3월 18일 2만여 명의 군중이 시위에 참여하여 영남포정사까지 행진하였고 이후로 4일 동안 연이어 맹렬한 만세시위를 벌였다.
연개장터 3.1 운동 만세시위지 | 함안
연개장터 3.1 운동 만세시위지는 경남지역에서 처음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1919년 3월 6일 김세민 등은 만세시위를 준비하여 3월 9일 연개장터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제주
미밋동산 3.1 운동 만세시위지 | 제주
미밋동산 3.1 운동은 제주 지역에서 처음으로 만세 운동이 벌어진 곳이다. 김시범과 김시은 등은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1919년 3월 19일에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만세시위를 하였다. 이후로 조천지역을 중심으로 4일간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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