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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독립운동가 엽서세트2 (2018)
Independence Activists 2 Postcards (2018)
한국어
독립운동가2 엽서세트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운동을 실천한 인물 12명을 소개하는 자료이다. 맨몸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의병부터 교사·사업가·시인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간 이들까지, 다양한 얼굴의 독립운동가를 담았다.
EnglishThe Independence Activists 2 postcard set introduces 12 people who fought for Korea's independence in their own ways, even though their names are not widely known. It features a range of independence activists, from members of the Righteous Army who resisted Japanese imperialism empty-handed, to teachers, business people, and poets who carried on the independence movement.
자료 원고 · 한국어
반크의 <독립운동가2 엽서세트>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두 번째 시리즈입니다. 독립운동가2 엽서에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독립운동의 삶을 살았던 12명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합니다.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일본제국주의의 거대한 폭력에 맞서 싸웠던 의병들과 교사와 사업가, 시인으로서 독립의 빛을 품고 이를 실천하며 독립운동을 하였던 독립운동가들 소개합니다.
반크는 <독립운동가2 엽서세트>를 통해 한국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대한민국의 위대한 독립운동가를 바르게 알고 세계에 바르게 알려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아가 이들 독립운동가의 뜻을 이어 그들이 꿈꿨던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 독립운동가의 심장 독도 Dokdo, Heart of Freedom Fighters
독도에서 통일까지 100% 완전한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가라!
한국인에게 독도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산 독립운동가의 심장입니다. 5천 년 역사를 꿋꿋하게 지켜온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 식민지가 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의 첫 번째 희생물이었습니다. 1904년 2월 8일 일본은 러일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군사 점령했으며, 한국에 대한 식민 통치를 시작하기 5년 전인 1905년에 한국 영토인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켰고 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침탈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독도를 강제로 빼앗아간 것처럼, 일본 통치에 저항하는 한국 사람들의 독립 의지를 꺾기 위해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며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한국인들의 심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1919년 3월 1일에는 무려 200만이 넘는 한국인들이 한반도 곳곳에서 독립운동가가 되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21세기 현재, 일본 제국주의 침략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일본 초·중·고교 교과서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적으로 빼앗았다고 서술하며 독도에 대한 왜곡된 역사 의식을 전 세계에 홍보하고 있습니다. 독도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 인식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도는 한국인들에게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제국주의 역사 인식을 심판하여 인류 보편적인 정의와 평화를 수호하려는 21세기 독립운동가로서 사명을 되새기게 합니다.
한국의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의 청년들은 21세기 독립운동가가 되어 부활하는 일본 제국주의를 막아내고 독립운동가가 꿈꾼 하나된 나라, 통일 한국을 성취하고자 합니다
“독도에서 통일까지 100% 완전한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가라!”
독도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노인 강우규 Kang Woogyu, Freedom Fighter
젊은이들이여! 전국 방방곳곳에서 쾌활하고 용감하게 한국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라
1919년 9월 2일, 서울역 광장에서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향해 66세 백발의 노인이 폭탄을 던집니다. 이 거사는 실패했지만, 일본경찰관 1명 사망, 37명이 부상한 큰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이 일은 외신을 통해 보도되어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젊은이보다 대담하고 젊은 심장을 가진 이 노인을 통해, 3.1운동 이후 한국 청년들은 독립을 향한 위대한 꿈을 품고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이 백발의 독립운동가 이름은 강우규입니다.
그는 1910년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 지배하자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합니다. 또한 러시아 블라디스토크에서 노인으로 구성된 독립운동 단체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서 리더로 활동합니다. 그렇다면 강우규는 왜 식민지 조선 최고위직인 총독을 처단하려 했을까요? 한국인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전 세계에 알린 3.1운동을 계기로 일본제국주의는, 힘으로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꺾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식민지배 정책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문화통치 란, 힘에 의한 지배는 조선인의 극렬한 저항을 불러올 것이니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며 한국인도 일본인처럼 교육을 받아 고위직에서 일할 기회를 정책적으로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우규는 일본의 문화정책을 부정했습니다. 3.1운동으로 높아진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서서히 사라지게 하고 한국인들 중 일본 제국주의에 협조하는 친일파를 적극적으로 키워 한국인들끼리 서로 싸우고 분열시키려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우규는 조선에 새로 부임하는 일본인 총독을 처단해 한국인을 일제의 정신적인 노예로 만드는 문화정책을 막고자 결심합니다. 이것이 66세 백발의 독립운동가가 품었던 위대한 꿈입니다.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된 강우규는 조선 청년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마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한국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강우규가 되어 쾌활하고 용감하게 대한민국의 꿈을 완성해 주세요!
강우규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교육가 김교신 Kim Gyoshin, Educator
세계지도를 뒤집어 보아라 한반도는 세계로 나아가는 항구다!
일본 제국주의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에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강조하며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했습니다.
“조선은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의 지배를 반복적으로 받았다!” “조선이 지리적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은 숙명이며 조선인은 주체적으로 나라를 경영할 수 없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조선은 일본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식의 왜곡된 일본 제국주의의 주장은 식민지 조선의 청소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도 그 생각이 전염되었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이자 지리교사인 김교신은 당시 조선인들에게 우리 나라 지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세계지도를 뒤집어 보아라! 한반도는 오대양 육대주로 나아가는 항구다.”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의 변방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중심이자 심장이다.”
“물러나 숨으면 더욱 불안하지만, 세계로 진출하기에는 세계 최고의 위치다.”
김교신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 아래 꿈을 잃어가는 한국인들에게 한반도는 세계 최고의 지정 학적 축복을 받은 나라이며, 이런 한반도의 지정학적 장점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의 젊은이들이 세계 문명 발전에 위대한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큰 꿈를 꿀 것을 격려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위대한 한국인 마라토너 손기정 또한 김교신의 제자입니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교육가 김교신.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김교신이 되어 교육가 김교신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세계지도를 뒤집어 보아라! 한반도는 세계로 나아가는 항구다.”
*김교신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교육가 김마리아 Kim Maria, Educator
리더십을 키우며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꿈을 성취해 나가라!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는 2.8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1명의 청년 대표 중 왜 여성이 없을까?” 1919년 2 월 8일 일본 동경에서 재일 유학생이 발표한 독립선언에 참가한 한 여성은, 2.8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청년 대표 11명 중 여성이 없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훗날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성장합니다. 그가 바로 자신은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며 독립운동에 힘쓴 김마리아입니다.
그는 1918년 일본 도쿄 유학생 독립단에 참여해 2.8독립선언에 참가한 후, 한국에 돌아와 전국적으로 여성들의 3.1운동 참여를 독려하다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받습니다. 감옥에서 나와 전국 15개 지부 2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한 김마리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등 여성 지도자로서 독립운동에 앞장섭니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 최초의 여성 대의원으로도 활약하였습니다. 그는 독립운동을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고 느껴 1923년 미국으로 건너가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습 니다. 미국에서도 그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1928년 미국 유학 중인 여학생들과 ‘재미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조직해 회장으로 활동하며 미국인들에게 일제의 조선 식민통치의 부당함을 고발합니다. 그녀는 미국 한인동포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성취될 때까지 자신의 다리로 서야 하고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진정한 지도력이 필요합니다”라고 연설하고 미주 한인동포들의 독립정신을 일깨우며 리더십을 지도해 나갑니다. 김마리아는 1933년 한국에 귀국해서도 신사참배 거부를 주도하며, 독립의 꿈을 청년들에게 심어주는 독립운동과 교육활동에 전념합니다. 조국의 독립에 평생을 헌신한 그녀는 광복을 1년 앞둔 1944 년에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생을 마감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김마리아가 되어 교육가 김마리아가 꿈꾸었던 위대한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리더십을 키우며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꿈을 성취해 나가라!”
김마리아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사업가 김익주 Kim Ik-joo, Korean-Mexican Entrepreneur
나는 코레아노! 우리가 대한민국!
‘애니깽’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애니깽은 선인장을 의미하는 말로 20세기 초 멕시코로 건너간 한국인 이민자를 칭하는 표현입니다. 1905년 1,033명의 한국인이 ‘지상낙원’에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멕시코로 떠났지만 멕시코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지상낙원이 아니라 선인장의 일종인 애니깽 재배 농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노예와 같은 처참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에 힘을 보태고자 돈을 모아 독립 자금을 후원하였습니다.
1905년 32세의 나이로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멕시코로 이주한 김익주 또한 애니깽 재배 농장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김익주는 농장에서 나와 식당과 회사를 경영해 사업가로 큰 돈을 벌었고, 번 돈 대부분을 독립운동 자금에 사용했습니다. 또한 그는 멕시코 한인 지도자로 활동하며 3.1 운동 기념행사, 순국선열기념식 등 한인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하나로 결집하는 다양한 독립운동을 했습니 다. 1920년에는 당시 기준으로 1,500달러의 거금을 독립운동에 지원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와 사업 등 전 재산을 처분해 미국의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와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후원했습니다. 김익주는 전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보낸 뒤 정작 자신과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1955년 8월 11일 81세의 나이로 멕시코시티에서 생을 다할 때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한 김익주. 그리고 멕시코 애니깽 재배농장에서 힘들게 일하며 번 돈을 모아 독립자금을 후원한 수많은 무명의 멕시코 한인 동포들 조국의 독립을 향한 이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었으며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100년 전 멕시코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 후손들은 지금도 멕시코에서 한글학교 등을 운영하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21세기 김익주가 되어, 김익주가 꿈꾼 세계 속 위대한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나는 코레아노! 우리가 대한민국! 김익주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군인 김좌진 Kim Jwajin, Freedom Fighter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것이 너무 한스럽다.
한국 독립운동역사상 최대 승리인 청산리 대첩을 알고 계시나요?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군과 홍범도의 연합부대가 1920년 10월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 정예군대와 10여 차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한국 독립운동의 위대한 역사입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200명이 전사했고 독립군은 100 명이 전사했으며 당시 사용한 독립군의 무기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후원해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막강한 일본 제국주의 정예군을 상대로 승리한 독립군 최고지도자 김좌진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부자 집안 아들로 태어나 불과 17세 어린 나이에 집안 노비 30명을 불러 노비문서를 불태우며 노비들을 해방시킵니다. 심지어 집안 소유 논과 밭까지 처분해 노비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줍니다. 그가 노비들에게 자유와 재산을 준 것은 빼앗긴 나라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신분제를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인 모두가 신분의 차이 없이 자유인이 되는 조국의 미래를 먼저 보았고, 이 꿈을 행동으로 실천한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김좌진은 그 무엇보다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1910 년 조선이 일제 식민지가 되자 독립군 사관생도를 양성하기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고, 그 과정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 6개월을 복역합니다. 일본 감시가 심한 한국에서는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한 김좌진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군대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1,600명 규모의 독립군을 훈련시키며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대항하는 다양한 전투를 수행하는데, 특히 가장 대표적인 청산리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청산리 전투가 독립운동 역사에서 위대한 이유는, 아무리 막강한 일본 제국주의 군대라 할지라도 우리 민족이 힘을 모아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죽는 날까지 자신의 삶 전체를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쓴 김좌진 장군. 그는 1930년 1월 24 일 40세 나이에 생을 마감하기 직전 이런 말을 남깁니다.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한스러워서…….” 죽는 순간까지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했던 김좌진 장군.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김좌진 장군이 되어 그가 만들고자 했던 위대한 대한민국의 꿈을 완성해 주세요!
김좌진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아동문학가 방정환 Bang Jeonghwan, Children’s Book Writer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에게 투자하라!
세계 최초의 어린이날이 바로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사실을 알고 있나요? 이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 선생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억압하며 수탈했던 제국주의 시절, 식민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가장 취약하고 천대받는 존재였던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고 높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식민지배의 가장 큰 특징은 민족말살정책이었습니다. 역사, 문화, 언어, 종교 등생활 전반에서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파괴해 하급단계의 일본인으로 바꿔 전쟁에 동원할 노예를 양성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일제의 노예가 아닌, 곧 독립된 조국의 주인 공이 될 아동과 소년을 계몽하고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아동 운동으로 일제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아동을 비하하는 호칭만 있던 것을 안타깝게 여긴 방정환은, 아동을 어른과 같은 인격체로 존중하기 위해 ‘어린이’라는 존칭어를 만들고 이를 딴 한국 최초의 아동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으며, 동화 「사랑의 선물」 등을 집필하며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합니다.
그는 1922년 5월 1일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제정했으며,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선언이라고 할 수있는 ‘어린이날 선언문’을 통해 어린이들이 인간으로 대우받고, 민족의식을 가슴에 품어 조국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성장하길 바랐습니다. 식민지배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가장 낮은 존재였던 어린이의 인권을 지켜내고 민족의 미래를 준비했던 방정환. 그가 꿈꿨던 독립된 조국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방정환이 되어, 방정환이 꿈꿨던 대한민국의 꿈을 완성해 주세요!
방정환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 Ernest Bethell, British Journalist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원히 살아 한국 동포를 구하라!
“내 말 백 마디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한국인들을 더 격동시킨다.”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의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두려워할 만큼 한국 인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언론인은 누구일까요? 일제의 한국 침략을 전 세계에 고발하고, 일본 제국 주의 저항 운동에 앞장 선 영국 출신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입니다. 그는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 특파원 자격으로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후 일제가 조선 강탈을 위해 황무지 개간권을 추진하는 등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목격한 그는 <대한매일신보>와 영자신문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창간하고, 일제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외국 언론인 신분을 이용해 일제의 침략을 국제사회에 알렸습니다. 당시 한국인 발행 신문에는 일본 검열로 싣기 힘들었던,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증거하는 고종의 밀서 등을 보도하며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를 전 세계에 고발하고, 일제에 저항하는 의병 활동을 소개해 항일 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베델의 항일 활동에 곤란해진 일본 제국주의는 그를 모함해 재판을 받게 했고 여러 재판으로 건강이 악화된 베델은 1909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습니다. 베델은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원히 살아 한국 동포를 구하라!”라고 유언을 남길 만큼 자신이 만든 <대한매일신보>가 한국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끝까지 싸워 줄 것을 꿈꾸었습니다. 베델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이 모였으며, 장지 까지 동행한 사람만 1천 명에 달할 정도로 한국인은 베델을 존경했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그를 향한 한국인의 마음은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새겨진 베델의 묘비문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는 2천만 한민족의 의기를 고무하며 일제에 목숨과 운명을 걸고 싸우기를 여섯 해나 하다가 마침내 한을 품고 돌아갔으니, 이것이 공의 공다운 점이고 또한 뜻있는 사람들이 공을 위해 이 비를 세우는 까닭이로다. 드높도다 그 기개여, 귀하도다 그 마음씨여. 아! 이 조각돌은 후세를 비추어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어니스트 베델이 되어 언론인 베델이 꿈꾸었던 위대한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원히 살아 한국 동포를 구하라!”
어니스트 베델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시인 윤동주 Yun Dongju, Poet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2018년 5월 8일 일제강점기 한 청년이 남긴 시 144편과 산문 4편이 항일독립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한국문화재로 등록된 이 시를 쓴 사람은 윤동주입니다. 윤동주는 1943년 일본 유학 중 일제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됩니다. 체포 당시 그의 죄목은 일본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민족문화와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청년 윤동주는 어떤 방식으로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을까요?
1937년 일본 제국주의는 ‘내선일체’라는 구호 아래 한국인을 대상으로 민족말살정책을 추진합니다. 내선일체란 일본과 조선이 하나의 몸이란 의미로, 한국인의 민족 주체성을 없애기 위한 정책입니다. 이를 위해 일본은 한국인에게 일본식 이름을 강제로 사용하게 하는 창씨 개명과, 학교에서 한글 교육을 없애고 일본어만 사용하게 했습니다. 또한 한글로 된 신문을 강제 폐간하는 등 한국인이 한글을 접할수 없게 했습니다. 하지만 윤동주는 일제의 한글 사용 금지에 순응하지 않고 한글로 시를 써나가며 자신만의 문화독립운동을 전개합니다. 죽는 순간까지 일제의 한글 사용 금지정책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한글로 시를 써 내려간 윤동주는 조국의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둔 스물여덟 나이에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에도 그가 남긴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어 한국인들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시를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켜 나간 윤동주. 한국 정부는 윤동주의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윤동주가 되어 윤동주가 걸어가고자 한 그 길을 함께 완성해 주세요!
윤동주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의병 Unknown Righteous Army Soldier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인으로 싸우다 죽겠습니다.
백 년 전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무명의 의병들의 위대한 용기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1905년 일본 제국주의는 을사늑약을 통해 조선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고, 조선인에 대한 야만적인 무력 진압과 탄압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1907년 9월 24일 대한매일신보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에는 일본 제국 주의 군대와 싸우는 조선 의병의 사진과 인터뷰 기사가 소개됩니다.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 신문사 특파원 맥켄지가 조선 의병을 취재함으로써 세상에 처음 그 존재가 드러난 것입니다. 신문에 등장한 12 명 가량의 의병 중 한 사람은 구식 군대의 제복을 입고 있지만 나머지는 오래되고 낡은 한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종류의 총을 들고 있으며 그 가운데 성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맥켄지가 한 의병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일본 제국을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대한제국 군복을 입은 젊은 의병이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어차피 죽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인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이길수 없음을 알면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무명의 의병들. 한 외신기자의 눈에는 일본제국의 막강한 군대에 맞서 제대로 된 훈련과 무기도 없이 싸우는 이들의 무모한 도전이 안타깝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맥켄지는 이들을 통해 한국인의 위대한 용기를 보았습니다.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이라는 회고록에 조선 의병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는데, 여기에 그의 생각이 드러납니다. “조선의 의병들은 이길 희망이 없는 전쟁에서 이미 죽음이 확실해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난 몇몇 의병들의 영롱한 눈초리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았고 그때 깨달았다. 가엽게만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들은 적어도 동포들에게 애국심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맥켄지는 회고록에서 “한 일본인 고위관리는 그 당시 일본제국 군대 2만 명이 조선의 의병들을 진압하는데 동원되었고 한반도의 약 절반이 무장봉기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에게 ‘비겁하다’ 거나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서 무심하다’는 식의 조롱은 그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용기란 무엇인가요? 이길 수 있을 때, 용기를 갖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길 수 없을 때, 심지어 죽음이 명백한 상황에서조차 용기를 갖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인으로 싸우다 죽겠습니다.”
의병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시인 이육사 Yi Yuksa, Poet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일제 강점기 펜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저항 시인 이육사가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한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그는 일제 강점기 일본이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 단체로 유명한 ‘의열단’으로 활동하다 잡혀 감옥에서 수형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수형생활 중 일본 제국주의가 자신에게 불렀던 수인번호 ‘264’ 에서 ‘육사’를 자신의 호로 정할 만큼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꺾이지 않은 용기를 가진 위대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이육사는 감옥에서 모진 고문으로 몸이 쇠약해지자 더 이상 총으로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해 서른 살이 넘어 총 대신 펜으로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시인으로서 글과 문학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적인 통치에 고통받는 한국인들에게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민족 정신을 일깨우고자 했습니다. 40년 짧은 삶 동안 무려 17번 검거와 투옥을 당했으며, 감옥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시를 쓰며 일제에 대항한 위대한 독립운동가. 그는 광복 1년 전인 1944년 1월 16일 감옥에서 고문 끝에 숨을 거둡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온 힘을 다해 한국인에게 전한 이야기는 ‘광야’ 라는 시에 드러납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그가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며 기다리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1945년 광복이 되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모든 한국인에게 찾아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이육사가 되어 시인 이육사가 기다렸던 위대한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교육가 임천택 Im Cheontaek, Korean-Cuban Educator
우리가 한국인임을 기억하라! Remember we are Koreans!
김구가 남긴 백범일지에는 “미주, 멕시코, 쿠바 각국의 한인 교포 1만여 명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자금을 임시정부로 상납하였다…쿠바에서는 임천택, 박창운 등이 임시정부를 후원하였다”는 글이 있습니 다. 일제 강점기 한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쿠바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임천택은 어떤 사람일까요?
1904년에 조선의 한 신문에 멕시코 농부 모집공고가 실립니다. “멕시코는 미합중국과 이웃한 문명 강국이니 그 나라에는 부자가 많고 가난한 사람이 적어 노동자를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한국인도 그곳에 가면 반드시 큰 이득을 볼 것이다. ‘4년 계약, 주택 무료 임대, 높은 임금’ ” 이 광고를 본 임천택의 부모와 조선인들은 4년만 일하면 부자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믿고 1905년에 멕시코로 떠납니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린 것은 노예의 지옥이라 불리는 열대 선인장 농장이었습니다. “이곳 현지인을 지구상 5~6등의 노예라고 칭하는데 한인은 그 밑인 7등인 노예가 되어…. 무릎을 꿇리고 구타를 당하여 차마 못 볼 정형에 통탄이라 하였더라.” - 황성신문 1905년 7월 29일 - 이후 임천택의 부모는 계약 노예생활을 끝내고 조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이미 일본 식민지가 된 조선에는 돌아갈 수 없어서 쿠바로 떠납니다. 쿠바에서 임천택은 학교를 세우고 한인 젊은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며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심는 일에 앞장섭니다. 또한 그는 쿠바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섭니다. 일본 영사관이 한인들에게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 으니 일본인으로 등록하라고 협박하자 임천택은 1923년 한인들과 한인회를 조직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재정의 어려움에 처했다는 김구의 편지를 받고 모금 운동을 전개하여 임시정부에 큰 재정적 도움을 줍니다. 쿠바 한인들은 가난하고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도 조국을 위해 독립 자금을 지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임천택은 1954년 쿠바 한인들의 독립운동과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나간 내용을 담은 「쿠바이민사」를 발간합니다. 18세에 쿠바로 이주해 한인지도자, 독립운동가, 민족교육가로 활동한 임천택. 하지만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고국에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1985년 83세로 생을 마칩니다. 이제 여러분도 21세기 임천택이 되어, 임천택이 꿈꾼 세계 속에 위대한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임천택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학자 황현 Hwang Hyeon, Scholar
낙락장송은 오래된 돌무더기에서 송진 향기 천년을 가리라.
시인이자 학자로 조선 후기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히는 황현. 그는 1899년 위태로운 나라를 올바로 이끌기 위해 ‘언사소’를 지어 국가 개혁을 주장했으며 1905년 일제가 조선 외교권 강탈을 위해 을사늑약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애국시’를 발표합니다. 그의 나이 56세인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식민 지가 되자 “나는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국가에서 500년이나 선비를 길러왔는데, 나라가 망할 때한 사람도 책임지고 죽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아니한가”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합니다. 500년 역사의 조선 왕조가 나라를 빼앗기는 상황에서 조선의 리더십인 선비들 중 아무도 망국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조선 선비들이 추구한 학문은 허상이자 빈껍데기라는 것이 자결 이유였습니다. “새 짐승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린다. 무궁화 이 강산이 속절없이 망했구나.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 되새겨 보니 글 아는 선비 구실 참으로 어렵구나.”
조선 선비로서의 책임 의식을 자신의 목숨으로 증거한 황현은 ‘매천야록’과 ‘오하기문’을 저술해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국가 지도자들의 무능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선 민초들의 저항의 역사를 낱낱이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나라의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버린 매국노를 역사에 낱낱이 남겨 비판함과 동시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에게는 “낙락장송은 오래된 돌무더기에서 송진 향기 천 년을 가리라”라는 내용의 시로 추모했습니다. 황현이 남긴 시와 역사서는, 나라를 이끌어 나갈 국가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책임 있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나침판이 되고 있습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황현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습니다.
“낙락장송은 오래된 돌무더기에서 송진 향기 천 년을 가리라.”
나라를 사랑하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 독립운동가 황현!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황현이 되어 학자 황현이 꿈꾸었던 위대한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황현의 꿈을 세계 친구들에게 알려 주세요! _ kkum.prkorea.com
◎ 우리가 꿈꾼 대한민국을 기억하라! Remember the Korea we dreamed of!
광복을 맞이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들은, 1945년 11월 3일 중국 충칭의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 에서 한국으로 귀환하기 전 사진을 찍습니다. 꿈에 그리던 광복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태극기를 들고 계단에 선 독립운동가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꿈꾼 대한민국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여러분은 우리가 지킨 대한민국을 소중히 여기고 있나요?
여러분은 우리가 꿈꾼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고 있나요?
그날,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대한민국을 기억해 주세요!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100년 전 독립운동 가들의 꿈을 이어 21세기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한국 청년들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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